- 임경선
얼마 전 우울감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마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 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을.
마음속을 정직하게 들여다봤을 때 현재의 일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만족할 수 있는 일상을 손에 넣어야겠다는 욕망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가치관 위에서 심플하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언하고 마는 건 좀 곤란하다. 그 말은 '이게 나야, 어쩔래?'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함을 오만함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관계는 현재진행형이다. 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다져가는 성의를 보여주는 사람만이 시간이 흘러 현재의 관계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러니 과거에 친분을 맺은 기간이 아무리 길었어도 지금 점차 멀어져가는 사람들에 대해 무리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줌파 라히리는 말한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결핌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최선의 노력으로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고.
나는 인간이 내면에 저마다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취약성vulnerability를 몹시 애틋하게 생각한다. 평소엔 강한 척, 괜찮은 척 담담하게 살아가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속의 연한vulnerable 부분을 드러내고야 마는 솔직함도 좋다.
cherish는 그 동사의 대상 자체가 인생에 주어진 축복이기에 adore하는 상대와의 관계를 cherish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여지없이 최고로 아름다운 인생일 것이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평하거나 투덜대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떼 지어 몰려다니지 않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는 것.
현재로선 이것이 내가 나이 듦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다.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 아름다운 것만 보거나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모순이나 고통, 슬픔 등을 겪으면서 그것들을 감당해나갈 때, 다양한 감정의 결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과 본질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
설사 불운이 나를 움츠러들고 좌절하게 만들었다해도, 그것을 털어내고 다시 걸어 나갈 수만 있다면 다음에는 행운이 슬그머니 뒤에서 나타나 등을 힘차게 밀어줄 것이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애교를 부리거나 굽신거리지 않는 특유의 당당한 태도는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당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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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과 사람에게 받는 씁쓸함, 속상함, 외로움에 버티기가 힘들고 그 속의 내 감정들이 블랙홀같았다.
그 과정에서 읽기 시작한 에세이를 통해
나조차도 명쾌하지 못한 내 마음의 상태를 점차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