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오월 五月 - 피천득

R.S.D 2011. 5. 25. 16:52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 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서 이모가 읽던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란
작고 빛바랜 책을 우연히 읽었었다.
아마...발행한지 10년도 더 지났던 것 같다.
개정판과 달리 작고 얇고 가벼운 책이었다.
 당시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나지만, 성이 '피'라는 것도 특이했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고 선생님의 순수함이 느껴져서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5월 25일 오늘은 피천득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지 4년 되는 날이다.
 그 해에 학교에서 문학선생님이 보여주신 MBC특집과 지식채널e 영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 찔끔거렸었다.
고등학교 생활의 답답함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땐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내가 잘 해야한다는 내 나름의 부담감도 있었을 때였다.
영상을 보면서 피천득 선생님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순수하고 맑은 아이같은 모습에
저런 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슬프고
내 엄마가 생각나서 울컥했던 것 같다.
영상을 다시보니까, 그 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내 스스로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될 때
피천득 선생님의 새발의 피라도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기고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