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흘렀다. 엄마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신 지.
그 때의 기록들을 다시 읽어보니
'아..이랬던 시기가 있었지'하며 묘한 기분을 느낀다.
아직도 생생한 엄마의 수술 직후의 모습과
그 이전에 점점 어두워졌던 엄마의 안색,
그 건강의 이상신호를 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에 대한
자책감은 남아있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5년 동안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엄마의 건강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음과
엄마가 인생을 즐기며 본인의 건강에 신경쓰며 살게 되었음이
너무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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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은 착한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완치율이 높고 흔한 병이 되었지만
전이 확률도 높고 평생을 갑상선호르몬제를 먹으며 살아야 한다.
겪어본 사람과 가족에겐 마냥 쉬운 병이 아니다.
수술 후 3년째 되던 재작년,
엄마가 다시 체력이 약해지시며 안색도 나빠지고 기운이 없어지실 때가 있었다.
열심히 한약도 챙겨드리고 보살펴드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픈 와중에도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돈이 무슨 소용인가. 건강이 중요하지.. 하는 생각에
당시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지 않은 학생 신분임에도
엄마가 일을 그만두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오랫동안 본인을 잊은 채 엄마라는, 가장이라는 역할에
너무 충실하셨던 분이라 쉽게 일을 그만두지 못하실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항상 여행이 꿈이라던 엄마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열심히 모아둔 비상금으로
미국에 있는 이모네가서 쉬고 오시라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드디어 엄마는 출국 1주일 전, 마지막 근무를 하셨다.
미국에서의 2달은 확실히 엄마에게 새로운 자극,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었다.
공항으로 엄마를 마중나간 날, 엄마 얼굴을 보고 놀랐다.
안색이 밝아지고 표정이 살아있었다.
엄마는 홀로 뉴욕에서 1주일을 보내고 오시기도 했었다.
한적한 도시 외곽에 위치한 이모네를 떠나
과감히 20시간이 넘는 기차여행으로 뉴욕에 다녀오신 것이다.
"뉴요커들의 그 자유로운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그 거리를 거닐면서 내가 딴 사람이 된 것 같더라."
라는 엄마의 말에 뉴욕은 내게 고마운 도시가 되었다.
(언젠가는 엄마와 둘이 그 거리를 같이 거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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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엄마는 생애 첫 '자유인 생활'을 시작하셨다.
자유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엄마는
욕심만 앞서서 동시에 여러가지 활동을 하셨고 체력의 한계로 금방 지치며 골골거리셨다.
금단현상 겪는 사람마냥 차라리 다시 일을 하겠다고 툴툴 거리기도 하시고..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니
헬스클럽을 다니고, 정기적으로 등산을 가시고, 마사지 강의 모델(?) 활동하며
배우면서 마사지도 받으시고, 디톡스나 천연치유같은 프로그램도 참여하시고
건강을 돌보기 시작하셨다.
건강해야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다.
이후에는 죽기 전 꼭 하고 싶었다는 패러글라이딩도 성공하시고
요즘엔 수상스키도 열심히 배우고 다니신다. 여행도 열심히 다니시고..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엄마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시면서
(중국어, 영어, 서예, 약초공부, 등등등)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엄마가 외롭지 않게 곁에 좋은 분들이 많아진 것도 기쁨 중 하나이다.
나는 엄마를 지켜보며 '1년에 1번은 꼭 해외여행 보내드려야지!'하는 다짐을 스스로 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저렴한 항공권을 구해서 여행보내드리고 있다.
사진을 찍어도 항상 굳은 표정, 어색한 표정이었던 엄마는
여전히 셀카는 얼짱각도를 못찾으시지만
매우 엄청나게 밝고 해맑은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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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는 한동안 "나는 늦게 핀 꽃이다"였다.
지금이라도 엄마가 꽃피우는 시기를 보낼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가 실질적 가장이 되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엄마는 여전히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책임이 내겐 즐거움이다.
내가 아끼는 만큼 엄마가 하고 싶은 공부, 활동 지원을 할 수 있고
내가 열심히 모으는 만큼 엄마가 경험하고 싶어하는 해외여행 지원할 수 있고
그런 모든 삶의 노력들이 뿌듯하다.
내게 엄마는 50대 아줌마가 아닌,
반짝거리는 눈에 세상을 즐기는 여리고 밝은 소녀같다.
내가 받은 것보다 더한 보살핌과 마음을 다해야 할 존재-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를 지나고 나니, 더욱 엄마가 대단하고 감사하게 된다.
홀로 지금까지 잘 키워주신 점도 너무나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더 건강하고 밝아진 모습으로
오래오래 엄마와 함께 지내고 싶다.
지난 5년은 나 또한 시행착오를 겪은 셈이나 마찬가지니
앞으로의 5년은 좀 더 단단해지고 지혜롭게 세상을 헤쳐나가며
엄마에게 더 베풀고,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경제적 능력도 더 갖추고 그렇게 더욱 성장하고 싶다.